회장인사말

한국통역번역학회 회원 여러분!

 

21세기 세계는 국가 간 장벽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다양한 매체와 수단을 통해 소통을 확산시켜가고 있습니다. 외교 관계나 교역, 협상과 같이 국가나 기관들 사이의 공식적인 교류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개인들 사이의 접촉도 끊임없이 확대, 심화되고 있습니다. 모국어로 축적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 다른 문화권에서 이미 출판된 전문 서적을 통해 부족한 지식의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노력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온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꾸준히 확대되어 온 문명, 문화권 사이의 교류, 경계를 넘어선 지적 욕구의 충족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통역과 번역입니다.

 

학제간 연구로서 인지, 심리, 텍스트 언어학 등과의 연관 선상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통역, 번역은 1960년대 이후 새로운 연구 방법을 토대로 독자적 연구 대상으로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1990년대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을 맞이하면서 사회, 문화적 측면에 대한 연구로 그 영역을 넓혀간 통역과 번역 연구는 의미 전달을 중시한 해석이론, 스코포스 이론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능주의, 행위로서의 통번역, 그리고 최근에는 통역 및 번역 과정에 개입한 참여자들의 지위와 역할, 역사적 접근 등을 중심으로 그 연구 분야를 다양하게 확대시켜가고 있습니다. 베이커의 언급처럼 ‘형성 과정에 있는’ 학문으로서 통역학과 번역학이 뿜어내는 지적 에너지는 풍부한 연구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역으로 언어학, 민족학, 문화학, 사회학, 심리학 등 전통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타 분야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일반 및 전문대학원의 전공으로 통역과 번역이 개설되어 전문적 연구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학문적 열기는 교육으로도 이어져 전공이나 강좌 개설 기준으로 2012년 총 69개 대학에서 통역과 번역 관련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명, 낯선 문화가 만나는 곳에는 늘 통역과 번역이 있었습니다. 큰 변화를 예고하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 온갖 추측과 기대, 우려와 설렘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공감적 소통능력이라 생각됩니다. 문명과 문화의 충돌과 소통, 그 중심에 서온 통역과 번역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18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통역번역학회는 지난 시간 늘 그래왔듯 그 충돌과 소통의 중심에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한국통역번역학회장  이 혜 승